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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도서

강아지 똥

지은이
권정생
출판사
길벗어린이
페이지수
30
대상
세상 사람들이 '아이, 더러워'하며 다 피해가고 천대받는 강아지 똥이지만 민들레 꽃의 거름이 되어 예쁜 민들레 꽃이 피어날 수 있게 거름이 된다. 세상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존재일지라도 그 나름대로 쓸모있고 가치가 있다는 생명 존중의 생각을 갖게 한다. 또한 자기 자신을 아무 쓸모없고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자신감과 희망을 주어 자긍심을 갖게 할 것이다. 미디어 서평 "쓸모없는 것은 없단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이어도 그 쓰임새가 반드시 있다는 말이다. 아동도서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강아지 똥』도 그렇다. 비록 짧은 소품이지만 소외된 것에 대한 따듯한 애정을 담은 내용이 어린이는 물론 어른이 읽어도 훈훈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강아지가 볼일을 본 길가에 덩그러니 놓인 강아지 똥. 참새와 병아리로부터 ‘냄새가 난다’며 구박을 받고 농부에게 조차 외면당하면서 자신의 가치에 대한 고민에 빠진다. 그러나 절망하는 강아지 똥을 포근하게 감싸는 민들레. 강아지 똥은 민들레가 꽃을 피우는데 자신이 꼭 필요한 존재(영양분)임을 깨닫게 된다. 특히 포근한 글과 더불어 정승각씨의 정감 어린 색채의 그림은 이 책의 완성도를 높였다. 『강아지 똥』은 사실 1969년 동화작가 권정생씨가 ‘기독교 아동문학상’을 받았던 작품. 그 후 몇몇 동화집에 실리긴 했으나 큰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선생이 어린이들에게 구연동화라며 『강아지 똥』을 읽어주는 것을 목격한 정씨가 재출간을 권유하면서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권정생씨가 원본을 간소하게 줄여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이 책 역시 한참을 잊혀져 있다가 뒤늦게 빛을 본 셈이다. 이 책은 1996년 4월 초판이 나온 후 지금까지 36쇄에 21만부가 넘게 팔렸고, 요즘도 한달 주문량이 6000∼8000부에 이른다. 서울 교보문고의 한 관계자는 “6년이 넘은 책인데도 지난주 유아부문 판매 순위 2위에 올랐고 한달에 300부 이상 판매된다”고 말했다. ’강아지똥’은 연극으로도 올려져 12일까지 서울 정동극장에서 공연된다.<동아일보 책의향기 02/05/04 황태훈 기자> 가설 하나.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이 하는 일과 닮아 있다.’ 적어도 정승각(37)씨에게는 이 가설이 딱 맞아떨어진다. 동그라미에 가까운 얼굴, 초롱초롱한 눈빛. 가까이 얼굴을 맞대고 눈가의 잔주름을 발견하기 전까지 그의 나이를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 다름아닌 ‘동화 그림 작가’다. 가설 둘.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의 마음과 닮아 있다.’ 다시 정씨를 보자. 아이들과 빨래판을 긁으며 그 소리를 도화지 위에 그릴 줄 아는 어른. 강아지똥을 들여다보며 그 안에서 어린아이의 생김새를 떠올리는 어른. 그의 ‘어린이다움’은 비로소 마음에서 완성된다. “제 눈에 아이들은 그저 땅땅하고 까무잡잡하게만 보입니다. 갓 목욕탕에서 나온 것처럼 뺨이 볼그스름한 아이들은 도무지 그려지지 않아요.” 그래서 같은 동화 그림이라도 그의 것은 다른 어른들의 것과 많이 다르다. 이런 그의 품성은 아마도 타고났을 법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유치원 들어가면서부터 어른처럼 생각하고 어른처럼 행동하도록 규격품으로 길러지는 이 땅의 교육풍토에서 이 나이 먹도록 어린이다움을 온전히 간직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는 천성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저야말로 가장 전형적인 규격품이었습니다. 진짜 동심을 가져볼 기회가 제대로 없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아이들이 제게 잃어버린 눈을 돌려준 셈이지요.” 정씨는 지난 85년부터 민족미술협의회(민미협) 회원으로 철거촌이나 빈민촌을 돌며 벽화운동에 참여했다. 그땐 자신이 그린 그림이 곧 민중의 마음이라고 믿었다. 그러다 87년 여름 물난리를 겪은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마을에 벽화작업을 하러 가서 어린이들을 만났다. 그곳 아이들에게 물난리를 그림으로 그려보도록 하자, 아이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거침없이 도화지 위에 뿜어냈다. 해마다 물난리를 겪어온 아이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창피했습니다.” 명색이 미술한다는 사람이 어떻게 그려볼까 머리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을 때, 아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표현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새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그의 그림 선생이었다.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수백명의 아이들과 함께 동네 울타리나 학교 건물 벽에 그림을 그려왔다. 아니, 아이들은 자신과 정말 똑같은 모습을 벽에다 옮겨 놓았고, 정씨는 그저 아이들이 그리고 싶은 대로 마음껏 그려보도록 주문하는 일만 했다. 정씨가 아이들 책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우리나라 동화책 수준은 한심했다. 외국책을 들여와 글만 한글로 바꿔놓은 게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우리 동화책 삽화는 그저 눈가림 수준이었다. 그래서 88년부터 직접 동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출판계약을 맺고 시작한 일도 아니었다. 그저 아이들에게 수업료를 내는 셈치고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 일은 처음부터 모든 걸 새로 창조해내야 하는 고된 작업이었다. 무엇보다 앞서 이 길을 간 사람이 없었다. 여러가지 실험을 시도했다. 목판화로도 그려보고, 찰흙 인형을 하나하나 떠서 밑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탱화기법을 도입해보기도 했다. 남들은 보름이면 다 그리는 책 한 권 그림을 1년씩 붙들고 늘어졌다. 하지만 이 그림들은 모두 우리나라 동화책 출판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장난꾸러기 도깨비〉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 〈강아지똥〉 같은 책이 다 그런 것들이다. 정씨네 가족은 지난해 경기도 성남시에서 충북 충주시 엄정면 산골로 이사했다. 도시생활을 유지하기에 정씨의 벌이가 신통치 않아서였지만, 교회를 고쳐 쓰고 있는 시골집의 넓은 작업실과 가족들 먹거리를 해결해주는 텃밭, 아이들과 맘놓고 뛰어놀 수 있는 들판이 더 큰 덤으로 돌아왔다.<한겨레신문 98/9/25> '아동문학상’까지 거절한 ‘고집불통’ 권정생씨는 집에 찾아오는 사람 「문전박대」 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도시사람, 그중에서도 기자. 매정하기가 놀부영감 저리가라다. 사람대신 개구리와 생쥐와 토끼와 굴러다니는 개똥과 사랑을 나누는 육순의 작가. 통증이 심하면 며칠이고 누워있고 덜하면 일어나서 밥짓고 빨래 하고 글을 쓴다. 이틀전엔 그의 동화 「오소리네집 꽃밭」(길벗어린이)이 그림책이 되어 나왔다. 「강아지똥」의 그림을 그린 화가 정승각씨(35)가 1년에 걸쳐 완성 한 그림책. 하지만 그는 아직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모른다. 출판사 돌아가는 사정 이나 인세와 관련된 일에는 전혀 무관심한 작가다. 이 고집불통 노인은 4년전 아동문학상을 주려는 문단과 실랑이를 벌이기 도 했다. 안동까지 직접 상패를 들고 내려온 문단 원로들에게 그는 항의하듯 말했다. 『우리 아동문학이 과연 어린이들을 위해 무엇을 했기에 이런 상을 주고 받습니까. 아동문학만이라도 상을 없애야 합니다』 어색한 분위기속에 떠밀리듯 받아놓은 상패. 닷새뒤 상패와 상금을 우편 으로 되돌려보냈다.<경향신문 97/11/20> 육신은 ‘육십’…마음은 ‘동심’-동화작가 권정생 조탑리. 경북 안동에서 오십리길 산골마을. 사과나무밭 개울가에 붉은 슬레이트지붕을 얹고 선 조그마한 흙담집. 동화작가 권정생씨는 아무것도 없이 두마리의 강아지 「뺑덕이」「구대기」와 그곳에서 산다. 댓돌 위에 놓인 검정고무신 한켤레. 수수깡처럼 비쩍 마른 노인. 올해로 환갑을 맞은 그는 여태 그래왔듯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초야에 묻혀 홀로 산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30여년. 갈퀴같은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어가며 작 품집을 세어본다. 「강아지똥」 「바닷가아이들」 「사과나무밭 달님」 「 몽실언니」 「점득이네」…. 모두 열세권에 100편이 넘는 동화. 사람들은 몽실이를 들먹거려야 「권정생」이란 이름에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눔의 걸 참 많이도 썼군』. 책망하듯 말하지만 고통속에 잉태된 그 동화들은 아동문학사에 한획을 그은 뜻깊은 작품들이다 . 1937년 일본 도쿄 혼마치 뒷골목에서 태어난 가난한 노무자의 아들. 해 방 이듬해 돌아온 조국에서의 삶은 당대의 한국사와 마찬가지로 기구했다. 소작농인 아버지와 행상하는 어머니 밑에서 초등학교를 겨우 마친 뒤 각처 를 떠돌며 나무장수 고구 마장수 담배장수 재봉틀상회 점원노릇을 했다. 떠돌면서 문학에 눈을 뜬 그는 신문연재소설로부터 시장바닥에서 파는 삼류 대중잡지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러나 오랜 객지생활은 19살 청년에게 몹쓸 병을 안겨주었다. 늑막염과 폐결핵은 신장결핵과 방광결핵으로 번졌다. 아들 병구완을 하다 세상을 떠 난 어머니. 시집갈 나이가 된 여동생과 늙은 아버지에게 부담이 될까봐 집 을 나와 대구 상주 점촌 문경을 전전하며 유랑걸식을 했다. 꺼져가는 생명을 부여안고 도착한 곳이 안동 일직면 조탑리. 함석지붕의 조그만 시골예배당 문간방에 더부살이를 하면서 그는 「종지기」의 삶을 시작한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푸르게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며 「뎅 그렁뎅그렁」 종을 울렸다. 한여름 소나기가 쏟아지면 구멍난 창호지 사이로 개구리들이 뛰어들어오 고 겨울이면 아랫목으로 생쥐가 파고들어 발가락을 깨물고 달아나던 문간방 . 동네 꼬맹이들의 집합장소이기도 했던 이 방에서 그는 생의 유일한 희망 인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69년에 발표한 데뷔작 「강아지똥」은 어느 비오는 여름날 처마밑에 굴 러다니는 강아지똥을 보고 쓴 동화다.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아 이리저리 채이던 강아지똥이 자신의 몸을 녹여 민들레꽃을 피운다는 이 짧은 이야기 는 당시의 한국아동문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강아지똥처럼 그의 동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세상에 버려진 보잘것없 는 존재들이다. 앉은뱅이 아줌마, 매맞는 할미소, 잡혀죽는 양, 미친 어머 니…. 한국아동문학의 걸작으로 꼽히는 「몽실언니」는 우리 슬픈 역사의 실루 엣이 드리워진 그의 대표작이다. 50년대 초반 전쟁이 빚어낸 가난과 소외, 폭력과 죽음 앞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절름발이 소녀. 단발머리 몽실이는 84년 출간된 이래 소리없이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TV드라마로 방영된 몽실언니의 원작료 70만원으로 그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지었다. 하지만 비새는 예배당 문간방이나 다를바 없다. 2평이 채 안 되는 비좁은 단칸방. 수북이 쌓인 책. 밥상 위 사발시계, 문지방너머 아무 렇게나 흩어져있는 도마와 양은그릇, 솥단지가 살림살이의 전부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불편하지 않다. 『바람도 살고 햇빛도 투명하고 교회종소리도 들려오지. 내몫 이상을 쓰 는 것은 남의 것을 빼앗는 행위야. 내가 두그 릇의 물을 차지하면 누군가 나 때문에 목이 말라 고통을 겪는다는 걸 깨달아야 해.<경향신문 97/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