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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참여

제목 내일
글쓴이 주성희 우수상


내일


사각사각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동영상 강의 하나가 끝나고 다음 강의를 듣기 전 잠깐 귀를 막고 있던 이어폰을 뽑았을 때 아주 작고 연약한 소리가 들려 귀를 기울이다 듣게 된 것이다. 낯선 소음이었다. 책상에서 일어나 남자 손 세 뼘 정도쯤 밖에 되지 않을 작은 창을 열었다. 어둑한 밖으로 하얀 것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눈이었다.

바닥에 쌓여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희고 눈부시게 내리는 걸 눈으로 담는 건 손에 꼽을 수도 없을 만큼 오래되었다. 그래서 하던 것도 놓고 멍하니 흩날리는 눈을 바라보았다. 첫눈은 아니라고 했다. 제법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라고 들었다. 어차피 우리나라가 눈이 적게 오는 곳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참 오랜만이었다.

원래 살던 지역은 눈이 오는 게 신기한 지역이었다. 짭쪼름한 바다내음이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에 섞이어 날아드는 곳이었다. 볕이 따듯하여 이곳에 살던 이들이 제가 살던 곳으로 오면 겨울인데도 날씨가 이리도 좋냐며 겹겹이 껴 입고 있던 겉옷을 한꺼풀쯤 벗어던지고 싶어했다. 그조차도 물론 대부분 10분을 채 넘기지 못했다. 사시사철 불어오는 소금기가 섞인 그 바람은 겨울이면 얼음송곳 마냥 차가웠다. 그 칼날같은 바람이, 자신들이 살던 서늘한 곳보다 더 추운것도 같노라며 벗었던 외투를 다시 주섬주섬 껴 입곤 했다.

춥지 않은 것이 아님에도 눈이 오지 않는 지역에서 살아, 눈이 오는 건 꼭 하늘이 주시는 특별한 행사 같았다. 몇 년에 한번 싸라기 같은 눈이 내릴 때가 있었다. 눈의 보송하고 맑은 결정이라기 보단 이름 그대로 부서진 쌀알 같은 얼음덩어리로 내리는 그 눈은 늘 쌓이지도 못하고 오래 내리지도 못하고 아주 짧게 왔다가 가곤 했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그 짧은 눈도, 그 얼음덩이도 눈이라고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창 밖을 보라고, 눈이 내린다고,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대곤 했었다.

그런 곳에서 살다 와서 그런지 아직도 눈만 보면 설렜다. 이곳으로 오고 눈을 보는 건 세 번째였지만, 이렇게 제대로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들어야 할 영상강의가 아직 남아있었지만 한번 떠올랐던 기억을, 마음을 가라앉히는 게 쉽지 않았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옷걸이의 외투를 찾았다. 급하게 온 길이라 외투가 겨우 세벌 뿐이다. 그 중에서도 이런 영하의 날씨를 버틸만한 외투는 패딩인데, 날이 너무 추워 급하게 산 싸구려 솜을 넣은 패딩조차 단 하나 뿐, 나머지 두 장은 초겨울에나 입을 모직이 혼방된 코트였다. 코트 두 개 중 무엇이 더 따듯할까 가늠하다가 결국 집어든 건 영하로 떨어진다는 내일 입으려 생각한 패딩이었다. 눈 내리는 날 얇은 코트를 입고 돌아다니다 감기가 드느니, 그나마 출근길은 거의 대중교통 안에 있을 테니 출근길 보단 눈 오는 지금이 딱 패딩을 입을 시간일 것이라 가늠했다.

옷을 고르고, 집을 나오는 사이 제법 쌓였는지 도로에 발을 내딛자 운동화의 낮은 굽 높이만큼 발이 푹 들어갔다. 아직 얼지는 않아 미끄럽지 않았고, 이왕 마음먹고 나온 것이니, 매일 두시간씩 걷는 근처 공원으로 걸어 보기로 했다.

노오란 백열등 아래 도로는 내리는 눈으로 금방 하얗게 변했다. 제법 많은 양이다 싶더라니, 시민들을 실어 나르기 위한 버스만 간간히 다닐 뿐 도로에 차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더 세상이 하얗게 보였다. 차도 드물게 다니는데다 인적도 끊기다시피 했다. 사람이 없다보니 가게들도 일찌감치 문을 받았는지 상가들의 불도 다 꺼진 상태였다. 노오란 가로등 불빛이 차가운 눈을 따듯하게 감싸 주어서인지, 그리 춥지 않았다. 인적이 적어 발자국도 거의 없는 눈 위에 제 흔적을 남기듯 천천히 걸었다.

어려서부터 눈이 좋았다. 하늘에 무언가가 내리는 게 무척 신기해서, 눈이나 비가 올 때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 좋았고, 그러다보니 더 좋아졌다. 역시 비보다는 내린 흔적이 역력한 눈이 좋았다. 이사를 제법 많이 다녔지만 눈이 잘 내리지 않는 남부지역 위주를 돌았어서 애석하게도 그 좋아하는 눈을 실컷 본 기억은 어렸을 때 단 한번 뿐이었다. 오늘 눈이 내리는 양으로 보아 이제 기억 속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때는 오늘로 기억이 될 것 같았다.

눈이 오지 않던 지역만 전전하던 제가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인지 자연스럽게 반추하게 되었다. 자의 였지만 타의 같기도 했다.

심각한 구직난이었다. 너무 많이 써서 닳아버린 탓에 밤에도 지독한 통증을 느끼게 하는 손목의 통증을 이유로 오랜 직장생활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도 이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리라 예측하지 못했다. 반년정도 차분하게 몸을 추슬렀고, 다시 취업을 준비했을 때 취업 시장은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구인을 하는 곳이 없지 않았으나, 이력서를 넣으면 열에 아홉은 연락이 오던 예전과 달리 고르고 골라 오십여장을 넣어도 전화 한통 오지 않는 날들이 지속 되었다. 가뜩이나 얼어붙은 취업시장인데다, 제가 살던 그 따듯한 지역은 갈수록 일자리가 줄어서 그에 비례하여 청년들도 대거 빠져나가고 있다는 기사가 실리고 있는 지역이었다.

굳이 신문기사가 아니어도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이력서를 넣어도 연락이 오지 않는 답답함에 다른 지역의 구인건도 함께 뒤지고 알았다. 제가 살던 지역의 구인이 100여건이면, 다른 지역은 200여건이 넘었다. 지역별 편차가 컸지만, 어찌되었던 제가 살던 지역은 구인이 적은 편에 속했다. 그래도 구인이 없지 않으니 기다려 보겠다는 인내는 두달을 채 넘기지 못했다. 한달여 동안 넣은 이럭서가 하루 10개씩만 잡아도 300건이 넘을 것인데, 면접 연락은 단 한번 뿐이었다. 절망적이었다. 그래서 기웃거려 보았다. 다른 지역을.

어차피 대한민국 영토이니 들어는 보았으나, 어디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니 가 본 곳도 거의 없었다. 그러다보니 너무 막연하게만 느껴져서, 그냥 지역을 고르는게 아니라 조건만 보았다. 살던 지역을 벗어나는 결정을 해도 괜찮을 조건을 제시하는 곳. 물론 그것도 초반 두 주 정도였다. 딴에는 큰 맘 먹고 다른 지역까지 이력서를 넣었지만 여전히 면접 연락 한 통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중에는 지역이건 뭐건 상관없이 가고자 하는 분야의 공고만 있으면 다 넣었다.

그렇게 흘러흘러 들어온 곳이 지금 회사였다. 면접 때 회사는, 이력서의 주소가 현 회사와 같은 지역이 아닌 것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저 저의 지난 시간을 물었고, 최저임금 겨우 지키는 임금도 괜찮냐는 세속적인 질문들이 전부였다. 회사는 제가 그 곳에서 잘 할 수 있는 것인지만 궁금했을 뿐, 저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하나도 궁금해 하지 않았다. 독립이 하고 싶어서, 수도 근처에 살고 싶어서, 학교가 멀어서 등등 주소지는 고향에 두고 몸만 다른 곳에 옮겨두고 사는 사람들은 수 없이 많았고, 회사는 저를 그 사람들과 비슷한 사람으로 여긴 듯 했다. 그렇게 낯선 곳에 도달했다.

그냥 사는 곳이 바뀌는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이사 경험이 두 손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은 되었고, 외국에 나가는 것도 아닌, 대한민국 영토내이니 별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급하게 제 허리께까지 오는 캐리어 하나에 옷가지와 생필품을 들고, 좁다란 창이 있는 작은 방 하나 구해 몸을 뉘였을 때까지만 해도 그 생각은 여전했었다.

그게 아니라는 건 한달이 채 되기도 전에 알았다. 성인인데, 혼자서 밥도 먹을 줄 알고, 술을 사도 더 이상 신분증을 요구하지 않을 나이이고, 이 집을 계약하는 계약서도 혼자서 중개인을 만나 도장도 찍을 수 있는 성인인데. 그런 성인이니 이정도 환경이 바뀌는 것 따위는 금새 적응할 줄 알았는데, 오판이었다.

제법 많은 이사 횟수 속에, 어차피 전에 살던 지역도 고향은 아니었어서, 고향조차 그리 인상 깊은 추억이 많을 만큼의 시간을 보낸 적이 없어 저에게 추억할 고향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어서 그래서 더 낙관했었던 것도 같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새벽 운동을 다니고, 퇴근 후에는 문화생활을 즐기고, 주말에는 근처 마트를 쇼핑하고 요리를 하고. 그런 아주 평범한 삶을 살아왔기에 지역이 바뀐다고 그게 별 다른 의미를 가질 것 같지 않아서, 박봉이나마 내일Job을 다시 가질 수 있게 된 것이 행복하여, 지역이 바뀌어도 내일Tomorrow이 그리 달라지지 않을 줄 알았다.

퇴근 후에 갈 곳이 없었다. 만날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 집에 전부였다. 마트도 꺼려졌다. 주변에서 들리는 다정한 가족들의 대화 소리를 부러워 하는 제가 싫었고, 그 대화 속의 상냥한 어투가 낯선 것 같은 저의 말투와 너무나도 달라 이질적으로 들렸다.

낯선 곳이란 그런 것이다. 여기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조금이라도 내일Job에서 더 나은 삶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제 능력을 높이기 위한 동영상 강의를 듣는 것. 그리고 이 낯선 내일Tomorrow이 조금 더 익숙해 질 수 있도록, 집 근처의 넓은 공원을 말 없이 몇바퀴나 도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내리는 눈송이의 양이 더 늘어난 것이 느껴졌다. 노오란 가로등 불빛만 제외하면 주변은 거의 완전히 희게 물이 들어있다고 과언이 아닐만큼 많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루 두어시간의 강의를 듣고, 그러고도 답답함을 못이겨 못해도 두시간 이상 산책해서 제법 친근하게 느껴지던 공원조차도 낯설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겨우 조금 익숙해 졌나 싶었는데, 좋아하던 눈이 익숙한 모든 것을 감추어버렸다.

눈의 탓이 아님을 안다. 그것은 자연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당연한 것이다. 그 당연한 것처럼, 저 또한 내일Job을 위하여 익숙한 내일Tomorrow을 포기했음을.

물론 언젠가는 눈이 녹아 사라지듯, 저 또한 내일Job과 내일Tomorrow에 익숙해 지면 언제 이런 생각을 했었나 싶을 때가 반드시 오리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언제올지 알 수가 없어 아득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멍하니 흰 눈이 쌓인 나뭇가지를 올려보았다. 눈물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