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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도서

이삐 언니

지은이
강정님
출판사
푸른책들
페이지수
202
대상
일제시대를 겪은 작가의 시선이 어린 복이를 통해 고통보다는 그 시절의 순수함과 그리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정이 살아있던 시절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6편의 짧은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는데 특히 <날아라, 태극기>에서 복이가 덕이에게 태극을 설명하는 부분은 어린아이의 천진함에 웃음이 나오다가 그것이 비장함으로 이어지며 진한 감동에 이르게 된다. 미디어 서평 길고도 험한 삶의 길 "모든 걸 사랑해야지" ‘나는 나를 이끌어 온 길을 믿었다. 어디로 데려가는 건지 모르지만 길은 결코 나를 배반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다소 관념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 문장이 ‘이삐 언니’ 안에서는 생생한 생명력으로 살아난다. 그 길을 다 걸어온 사람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깊이와 여유가 책 곳곳에 묻어나기 때문이다. 이제 예순을 훌쩍 넘긴 저자. 젊은이들이 숨이 넘어갈 듯 자기의 문제를 털어놓을 때, 여유있는 미소와 따뜻한 눈빛만으로 그들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음을 삶의 깊이라고 하던가. 이 책은 동화로서는 중편이라 할 만한 길이의 작품 6편이 연작으로 되어 있다. ‘복이’라는 여자 아이가 커가면서 조금씩 배워가는 삶의 비밀은 대단한 것이 아니어서 마음이 놓인다. 큰 길이 아닌 샛길에서 만나는 많은 단상들, 수다스럽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채워가는 많은 등장 인물들, 일단 걸어 온 길은 끝까지 가야만 한다는 피할 수 없는 진리, 인간을 둘러 싸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애정. 이런 것들이 쉽고 말끔한 문체와 촘촘한 묘사 때문에 더 가슴에 남는다. 해방 전후 무렵, 밤남정이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하지만, 오십년이 넘은 지금도 전혀 낯설지 않음은, 고향에 대한 향수라기 보다는 인간의 삶은 어느 때나 같은 진리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산다는 건 그런 걸 게다.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면서, 할아버지처럼 절대적인 힘을 따라, 되돌아 갈 수도 없고, 가끔은 ‘소달구지’의 도움도 받으며 월이처럼 내가 돌봐야하는 어떤 것과 함께 하는 걸 게다.’ (이 책에 수록된 동화 ‘봄이 오는 날에’ 중) 이제 막 사춘기를 맞이하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읽고 앞으로 자기가 살아갈 삶의 모습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읽기에 긴 호흡이 필요한 책이지만, 책읽는 힘을 지닌 아이들만이 맛보는 뿌듯함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동아일보 00/11/25 김혜원(주부)> 육십삼세 할머니 동화작가가 쓴 천진하고 아름다운 '동심의 세계' 연작동화집 ‘이삐 언니’의 주인공은 아홉 살 안팎의 여자아이 ‘복이’이다. 그리고 이 책의 지은이 강정님씨는 등단한지 십여년 만에 첫 동화집을 내는 육십삼세의 할머니 동화작가이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작가 자신이 마치 아이가 된 것처럼 천진하고 아름다운 동심의 모습이 작품 곳곳에서 반짝이는 점이다. 일제 강점기를 살고 있는 아이들은 어른들이 모두 쉬쉬하는 ‘태극’이 무엇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너무나 알고 싶어한다. 맏언니인 복이는 자신의 상상을 통해 만들어낸 태극을 동생에게 말해준다. “태극은 무지무지 무섭게 생겼어. 호랑이보다 귀신보다 무섭고, 이빨은 송곳 같고. 콧짐을 뿜으면 회오리 바람이 일어서 뭣이든 몽땅 입으로 빨려들어가는디, 일본사람만 잡아묵어.”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덧붙인다. “태극은 절대 안잽혀. 낮에는 달력속에 잠자다가 밤만 되면 연기로 변해 갖고 나오는 거여. 너 연기 잡을 수 있냐?” 이런 복이의 친척인 광암 아저씨는 어렵게, 어렵게 구한 집을 미련없이 어시(귀신)에게 내어주고 이삿짐을 싼다. 도깨비골이라고도 불리는 외딴 곳에 있는 그 집이 물에 빠져 죽고, 총에 맞아 죽고, 어려서 죽은, 차마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가엾는 원혼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부적을 갖다 붙이면서 어떻게든 어시들에게 집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아주머니에게 아저씨는 이렇게 말한다. “나 손철용이는 넘을 못 살게 험시로 살아오들 안 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잡지는 않네. 상대가 사람이든 어시든 말이여.” 복이같은 아이와 광암 아저씨같은 어른이 함께 사는 세상, ‘이삐 언니’에는 그런 세상이 찬찬하고 따스하게 그려져 있다. 섬세한 묘사와 치밀한 구성, 중층적인 이미지와 비유가 감칠맛 나는 남도 사투리와 잘 어우러진 이 작품은, 형식면에서는 소설과 통하고 내용면에서는 시와 더 가깝다는 동화라는 장르에 잘 맞아 떨어지는 작품이다. ‘이삐언니’는 흥미로운 읽을 거리이면서 동시에 문학의 향기를 지닌 작품을 기대하는 어린독자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조선일보 00/9/30 이윤희(동화작가·계간 아침햇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