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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도서

가던 새 본다

지은이
한창훈
출판사
창작과비평사
페이지수
275
대상
작가의 시선은 서민들의 삶에 발을 딛고 그 삶의 진정성을 끊임없이 모색한다. 그의 눈에 비친 서민들은 다른 계층의 삶을 기웃거리나 냉소와 질시를 담은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의 삶을 인정하고 그 삶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으며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에 굳게 발을 디디고 열심히 살아보려고 몸부림친다. 미디어 서평 가련한 이들의 공허에 깃든 낙관 한창훈(35) 씨의 두 번째 소설집 <가던 새 본다>가 창작과 비평사에서 나왔다. 지난 96년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를 묶어내면서야 평단의 관심권 안으로 들어온 한창훈씨는 어느새 동시대 사실주의 소설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잡았다. 단편 열 개를 모은 <가던 새 본다>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한씨가 관심 갖는 인물들은 세상의 주변으로 밀려난 힘없고 가련한 이들이다. `바람 아래` 라는 작품의 무대로 설정된, '살아 있는 것은 모조리 죽어 있고 대신 바람만 그 공허한 빈자리를 가득 메우는 곳'은 한창훈적 공간이라 할 법하다. 이런 공간에 서식하는 인간들이란, 출세하고 명예 얻고 아파트 사고 해외 여행 하고자 다투어 나대는 이들의 세상에서 `퇴출` 당한 우수리이기 십상이다. 노인, 날품팔이, 어민과 농민, 왕년의 논다니, 가족과 집을 떠나와 정처 없이 흐르는 떠돌이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나름의 상처와 회한을 훈장처럼 거느리고 '마음놓고 울 만한 곳을 찾아'(`바람 아래`) 구석으로 구석으로 숨어 든다. 이런 배경과 주인공들이 연출하는 이란 필경 아프고 슬프기 이를 데 없어야 마땅할 터인데, 신기하게도 소설의 정조가 마냥 어둡지 만은 않다. 거꾸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결말로 나아가기 일쑤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것일까? '저 똥이 변소간 안에서 묵어 독이 다 걸러졌단다.'라는, 표 제작의 주인공 할머니의 말에서 그 근거를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아마도 똥을 걸러 약으로 만드는 세월의 힘을 신뢰하는 것일 터이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인간에 대한 궁극적 신뢰와 낙관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그 한 증거일, 삶에 뿌리박은 살아 있는 비유들은 건강한 웃음과 재미를 선사한다.한창훈씨의 소설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삶을 다룬다는 점에서 민중 소설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딱딱한 사실과 날선 주의 주장에 함몰되지 않고 서정적 아름다움과 내면 심리의 묘사라는 문학의 본령을 견지하고 있다. 70년대 황석영씨의 아름다운 단편들, 또는 이문구씨의 토속적 `세계를 연상시키는` 한씨의 소설은 90년대 이후 한국 문학이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우리의 자산인지를 잘 알려준다. <한겨레신문 98/7/7 최재봉 기자>